이원윤 졸업생: 의료인류학 소개

애쉬튼 커쳐 영화배우는 인생을 살지(live) 말고 인생을 만들어가라(build) 라고 말했습니다. 저번주에는 대학생활부터 지금까지 계속 새로운 도전을 찾으며 자아 발견에 열중했던 아서당 졸업생을 소개받았습니다. 멀리 있었지만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었고, 보스턴 시각 현재 새벽6시, 긴 내용을 담은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YLA 9기 허브반에서 공부했던 이원윤 졸업생의 스토리가 담긴 편지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들어볼까요?

1. 현재 하고 계신 일, 공부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Harvard Medical Anthropology MA 프로그램에 재학 중인 이원윤입니다. 9기 허브반은 제가 의과대학 본과 3학년 때 시작했으니, 벌써 5년 전이네요.
한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3년간 일반의로 재직하다가 현재 보스턴에서 석사 공부중이고요, 앞으로는 미국에서 정신과 레지던트 과정과 인류학 박사를 마치고 Psychiatric Anthropology 연구를 하고 싶어요.

우선 Medical Anthropology 는 인류학의 세부 분야로, 질병과 환자들의 경험들을 관찰하고 사회문화정치적 의미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Psychiatric Anthropology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환자들의 정신질환 경험(mental illness experiences)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공부하고 있어요.

제 thesis는 강남역 살인사건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살인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인지, 아니면 그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우연히 저지른 묻지마 범죄에 불과한 것인지 큰 논란이 되었었죠. 그때 서천석 정신과 전문의가 살인사건의 원인이 정신질환에 있는지 여성혐오에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글을 썼어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환자가 ‘여성혐오적인 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정신질환 환자들의 망상 내용이 사회문화적 맥락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라고 했죠.

실제로도 서로 다른 문화권에 살고 있는 조현병 환자들은 다른 맥락의 망상 트렌드를 보입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 문화권에 있는 환자들의 경우 악마에 의한 저주, 본인이 신의 계시 받은 예언자라는 등의 망상을 보인다면, 정치적 억압이 심한 국가에 사는 환자들의 경우 정부 관계자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등의 망상을 보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저 또한 정신질환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사회문화적 문제들을 반영하고 사회문제들을 어느 정도 투영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한국의 과도한 경쟁 문화와 건강하지 않은 근무환경이 높은 자살률로 나타난 것처럼.

저의 강남역 살인 사건에 대한 연구의 경우,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와 여성에 대한 광범위한 피해의식이 비슷한 맥락의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증으로 조현병 환자들에게 유발되고 있으며, 망상증과 사회문화적인 ‘믿음체계(belief system)’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요지에서 발전되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여성혐오와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성 관련 담화들과 조현병 환자의 믿음을 비교분석한 연구를 했어요. 커뮤니티의 극단적인 담화들이 한국의 일반적인 여성에 대한 믿음체계(belief system)와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지금 미국에서도 Incel(involuntary celibate)이라는 인터넷 남성우월집단이 자신들의 성적인 실패를 여성들의 물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 등의 탓으로 돌리며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를 부추기기 시작했어요. 이런 담론들이 실제로 몇몇 취약한 남성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한국의 강남역 살인사건처럼 여성들이 폭력에 노출되는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한국의 오래된 현상과 지금 미국에서 막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을 비교 연구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다음 연구로 이 주제를 고려 중이에요.

2. 유학생활하면서 어려웠던 점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유학생활을 하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평생 익숙해져 있던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 같아요. 워낙 사람 만나는 걸 특별히 즐기지 않고,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저에게는 이제까지 당연하게 있어왔던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참 낯설었어요. 특히 대학원이라는 특수한 환경은 사람들과 친해질 만한 이벤트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들을 제공하지 않으니 알아서 여러 기회들을 찾고 스스로 노력해서 친구들을 만들어 나가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3. 대학생활 혹은 이십대 생활에 대해 조언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20대는 어떤 일을 하며 어떠한 모습을 삶을 살아나가고 싶은지 상상하고 실험해보는 시기 인 것 같아요. 저도 의대를 나왔지만, 진료하는 의사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고 어떤 인생을 만들고 싶은지 계속해서 고민해왔던 것 같아요. 그런 고민들을 놓지 않고 계속 몰두한 결과 중 하나가 YLA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된 점인 거 같고요.

가장 혼란스럽고 치열한 대학생활과 20대 초중반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조언을 하자면,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지 보다는 주변에서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는지, 어떤 주제가 재미있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잘 맞는지 스스로를 관찰하고 이런 저런 경험을 통해 실험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YLA에서 공부를 해보기도 하고, 의과대학에서 환자를 보고 해부실습에 참여하기도 했고, 모의유엔대회에 나가서 토론 경쟁을 펼쳐보기도 하고, IFMSA(International Federation of Medical Students’ Association; 세계의과대학생협회)라는 대학생 단체에서 NGO, 학생 운동에 기여해보기도 했어요. 마지막으로 실험한 것이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써 보는 일이었죠.

이러한 경험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어 더 다양한 가치관과 통찰을 제공해주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더 깊이 알게 되었다는 점인 것 같아요.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힘들어요. 20대에 이것저것 뛰어들어 경험해보고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배워나갔으면 좋겠어요. 세상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알아나가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쌓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4. 아름다운 서당에서 배운 내용 중 기억에 남거나 현재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는 것이 있나요?

YLA에서 배운 것 중 어느 하나가 특별히 중요하다고 짚어 말하기 어렵네요. 세상을 살면서, YLA 공부를 할 때만큼 체계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여러 다른 시각들에 대해서 읽어보고 그에 대해서 친구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기회를 갖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고 사는 모든 것들에 사실은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이 있고 YLA에서 읽는 책들을 통해 석학들이 제안했던 그런 맥락(절대적인 맥락이라기보다는 새롭게 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틀)들을 체험해보고, 친구들과 토론을 통해 스스로만의 세계관을 확립해 나가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제게는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5. 일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일상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은 어떻게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일상에 유지할 수 있는지 인 것 같아요. 학생 때 너무 공부만 했고, 이제까지 진로 고민에 매여 나의 삶과 일상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이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결정이 되고 나니 일상에 욕심이 나네요. 어떤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계속 고민 중이에요. 나이가 들어 갈수록 점점 자신만의 취미와 취향이 확고한 사람들이 멋있고 행복해 보이더라구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 요가, 와인, 고양이와 강아지,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여유로운 산책, 침대에 누워 빈둥대는 시간, 데이트, 책, 여행, 이런 것들과 그 외에 또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 그리고 취미와 취향과 나의 일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지킬 수 있는지,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6. 추천하시는 책이 있다면?

추천하는 책은 사회/과학 분야 책들은 이미 YLA 과정을 통해 충분히 많이 읽고 계실테니, 소설 두 권을 소개할게요. 베르나르의 개미와 빌 브로더의 Red Notice라는 책이에요. 개미라는 책은 인간사회와 개미사회를 비교하며 작가의 재치 있고 기발한 세계관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소설이에요. 너무 재미있어서 처음 접한 날에 밤을 새워 다 읽었고, 그 이후에도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통찰을 발견할 수 있어 정말 좋아하는 책입니다.

Red Notice는 작가 자신의 자서전적인 소설로, 구소련이 붕괴되고 있던 시기의 러시아에서 사업을 시작하며 공산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진 직원들과 고전하고 부패된 정부 세력에 맞서 싸웠던 경험을 담은 이야기에요. 특히 첫 챕터를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잘 써서 첫 챕터를 읽고 나면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베길 거 에요.
사실 사회/과학 분야에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 정말 많지만 제가 YLA 과정을 밟을 때에 담지 못했던 중요한 책 몇 권의 제목만 언급할게요. 총균쇠, 만들어진 신, 과학혁명의 구조, 이기적 유전자, 문명의 충돌이 생각나네요. 이 중 몇 권은 아마 지금 목록에는 추가되었을지 모르겠네요.
이런 책들은 주류 헤게모니에 맞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책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사회학 책들을 읽을 때에 이를 하나의 진리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또 다른 틀 중의 하나로 받아들이셨으면 해요. 모든 사회학 이론들은 어떤 이론이 어떤 시기와 장소의 현상을 얼마나 더 잘 설명할 수 있는가를 겨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이 보는 세상과 살아가고 있는 사회현상을 해석하기에 어떤 이론이 더 좋은 분석의 틀을 제공하는지 YLA 과정중에 충분히 경험해 볼 기회를 가지시길 바랍니다.